※(참고 : 작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길고 긴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은 여타의 로맨스 소설과는 달리 큰 갈등 없이 잔잔하고, 인물들이 나이들어 가면서는, 시간에 따른 이야기 전개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열적이지는 않지만, ‘순수한 사람들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이 글에서는 흉내만 낸 사투리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충분히 있는 사투리를 대충 흉내만 내는 걸 원치 않았기에, 외국어의 자막처럼 설명도 불가피 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순수'를 지향합니다.
그렇잖아도 지치고, 힘들고, 상처받은 이 세상에서, 글로써나마 작은 위로를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합니다.
제아무리 잘난 사람이건, 씩씩한 사람이건 간에, 저마다의 욕심으로 다들 외로워하기 마련이니까요.
표현하는 마음을 좋아합니다.
가슴에 품어두기만 한 따뜻한 관심과 사랑은, 상대방에겐 무관심과 똑같은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직접 보고 듣지 못했다면 아예 없는 거라고 생각해 버리는 오류를 흔히들 범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자연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선물이니까요.
* * * * *
12살 소녀가 69살 노인이 되기까지…….
사랑하며 살았던 그들의 모습. 그들의 자녀이야기까지 함께 실었습니다.
(1편은 ‘자연과 함께 성장하는 순수한 동심’, 2편은 ‘함께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행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결혼한 주인공 부부의 살아가는 모습, 그들의 자녀인 찬우와 용숙의 사랑 이야기까지……. 순자와 건우 커플을 통해선 중년의 사랑까지 함께 담았습니다.
무뚝뚝하지만 다정한 찬우와 아직 어린 용숙은 각각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요?
시간이 흐르며 오숙네 부부가 69살 노인이 될 때까지, 나이대별로 그 모든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 본문 중에서 >

[금숙이의 위문편지]
찬우야! 어제 회사 마치고 옴시는 문득 니 생각이 나더라.
옷가게에 붙어 있는 카탈로그 속의 모델이 우찌 그리 니를 쏙 빼닮았겄노? 으잉?
와, 그 요새 티브이 마이 나오던 갸 있다 아이가! 콩깍지라 캐도 우짤 수가 없다.
내는 니 군대 가고 나서, 티브이만 보모, 모든 연예인들이 다 니보다 몬한 것 같은께네, 이거를 우짜노? *뱅신매로(‘병신처럼’의 사투리) 그 사진만 뚫어지그로 쳐다보다 눈물까지 흘��지 뭐꼬!
얼른 제대하고 와서 니 잘난 실물 좀 평생 *비 도고!(‘보여 줘’의 사투리)
찬우야. 에나로 보고 잡다!
밤마다 니가 녹음시켜 준, 노래를 쭉…… 틀어 놓고 잔다. 니는 하루에 한 개만 들으라 캤지만, 사람 욕심이 오데 그리 되나? 자꾸 들은께네, 니가 더 보고 잡고 글타!
훈련 받느라, 쌔까맣게 탄 니 얼굴이, 내한테는 터미네이터보다도 더 남자답그로 *비고 그란다!(‘보이고 그렇다’의 사투리)
휴가는 운제 나오노? 울퉁불퉁 근육 새로 잡힌 니 팔뚝에, 다음에 오모 특별히 잔 근육 하나하나까지 다 키스 마크를 찍어 주꾸마!
그라모 그때를 기약함시는…… 우리 잘난 찬우, 훈련 열심히 하고, 내도 고무신 거꾸로 안 신고 외로버도 허벅지 쿡쿡 찔러 감시는 끝까지 잘 기다리고 있신께네, 니도 군화 거꾸로 신으모 안 된다이! 알았나? 그라모 ‘특별 팔뚝 서비스’도 없는 거 알제?
우짜든둥, 사랑한다! 내 말은 그 말인 기라!
*** 니한테는 한 개빼낀 여자, 금숙으로부터.


< 미리보기 >

“여보세요!”
한창 바쁘게 어딘가로 향해 가던 찬우가, 짜증 가득한 얼굴처럼 무뚝뚝하게 전화를 받았다.
“저…… 니 찬우 맞나?”
무뚝뚝하던 찬우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아빠 닮아 딴 애들한테는 차갑고 무뚝뚝해도, 금숙이한테 만큼은 언제나 살살 녹는 멋쟁이 찬우였다.
‘얘가 어쩐 일이야?’
휴대폰을 장만한 지는 벌써 오래됐지만, 금숙이한테서 전화 오기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일이라, 찬우는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어? 이 번호 뭐야? 너 휴대폰 장만했냐?”
“하모. 니한테 처음으로 전화하는 기다. 영광인 줄 알그래이!”
“이야! 휴대폰도 다 생기고, 강금숙이 출세했다! 이게 웬일이야?”
“너무 그라지 마라! 안 그래도 니 말 맨치로, 만날 어두븐 길 걸어 댕긴다꼬, 안심이 안 돼가, 너거 별장 관리하고 들어오는 돈으로, 아버지가 이번에 하나 장만해 주�愿�!”
“이제야? 중고등학교 육 년을 꼬박 걸어 다녔구만, 너무 늦은 감이 없잖아 있네?”
“하모! 내 말이 그 말이다. 하여간에 우리 아버지는 에나로 뭣을 모린다. 그자?”
“하하. 그래.”
“그란데, 니는 오데 가고 있었디노? 옆에 차 소리도 들리는 거 같은디?”
“휴. 말 마라! 내 사정도 너보다 나을 게 없다. 고3인 내가 지금 동생 기저귀 사러 간다! 믿겨지냐? 고삼한테 기저귀나 사오라니! 해도해도 너무하는 부모들이지 않냐?”
“말은 그람시노도 니도 용숙이 억수로 좋아하는 거 내 다 안다! 너거 옴마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엄고 말이다. 에나로 싫다 캐 봐라, 니가 억지로 할 아가? 안 글나?”
“흠흠. 누가 싫다고 했냐? 이건 뭐, 고3 특별 대우는 바랄 것도 없이, 모든 게 용숙이 위주로만 돌아가니 샘이 나서 그러지.”
그때서야 진심이 튀어나온 찬우였다.
“아따매! 열일곱 터울이 져도 동생 투정은 있는 갑지? 니도 얼라다 얼라!”
“야!”
“아따 무시라. 또 와!”

지기 싫어 냉큼 대답은 했지만, 뜬금없이 소리부터 버럭 지르는 찬우 때문에, 사실 그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내 앞에서, 애기 소리 하지 말랬지?”
갑자기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목소리에, 있는 대로 당황해 버린 순진한 열아홉 금숙이.
“고마 하는 말 아이가! 니도 참말로…….”
평소 때 제아무리 대장 노릇을 하고 살았어도,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무서운 통학 길에 대해 묻던 열일곱 그때 이후로, 이렇게 찬우 목소리만 높아졌다 하면, 자기도 모르게 슬 꼬리를 내려 버리는 금숙이였다.

“공부는 잘하고 있냐? 나보다 성적 떨어지진 않았겠지?”
지기 싫어하는 금숙이 성질을 건드려서, 꾸준히 그녀를 도발해 가며, 성적을 관리하고 있는 영리한 찬우였다.
“문디. 니보다 내가 몬하는 기 오이 있더노! 걱정 마라. 니 맨치로, 내도 요서는 톱을 달린다.”
“톱은 무신. 거긴 지방이잖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 맘과는 상관없이 찬우는 끝까지 깐죽거렸다. 근데 제대로 도발했나 보다. 좀 전까지 기죽어 있을 때는 언제고, 콧김까지 벌렁거리는 금숙이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그대로 전해져 왔다.
“야, 말하는 것 좀 보래이! 그라는 너 옴마 아버지는 은가……이, 거 있는 고등학교 나왔다 그자? 내랑 똑같이 선실 고등학교 나온 거, 내도 다 알거든? 지방이라꼬 무시하지 마라. 인구 삼십오만 명빼끼 안 되는 요 도시에 대학이 벌써 몇 갠 줄 니는 아나? 요는 그래도 교육의 도시인기라. *엔간한(‘웬만한’의 사투리)데 보다는 훨씬 학구열이 높은 데가 욘께네, 민식이 듣는 데서는 함부래 그런 말 말그래이! 민식이 갸가 생긴 거는 좀 그래도, 자존심 한 개는 쥑이 준다 아이가!”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자존심이라니! 지금 누구 소릴 하고 있는 거야?’
“……근데 말이야.”
“또 뭐!”
물론 예상대로 말 하나도 사근사근하게 나오지 않는 터프한 금숙이었다.
‘으이구, 내가 뭘 바라겠냐?’
“전화기 샀으면 사진도 찍어 보낼 수 있겠네?”
“뭐시……?”
왠지 머뭇거리는 금숙.
‘지기 싫어하는 금숙이도 사실은 부끄러운 걸까……? 아……! 너 너무 보고 싶다.’
“왜 그런 기능은 없냐? 거기 전화기는 서울하고 다른가 보지?”
또 제대로 도발하고 있는 찬우.
“이기 참말로 낼로 우찌 보고 그라노? 내도 다 된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부끄러운 듯싶다가도 하늘을 찌르는 자기 자존심만 건드렸다 하면, 여지없이 걸려드는 안타까운 금숙이었다.
“사진 보낼 줄은 아냐?”
“문디 짜슥. 에나로 내를 뱅신으로 아나? 내가 그런 것도 몬하는 촌년같이 비나?”
‘걸려들었군!’
피식. 웃음을 흘리는 찬우였다.
“그럼 네 사진 찍어서 보내 봐! 잘 보내나 보게.”
실은 고3이라, 예전처럼 자주 못 내려가서 금숙이 생각이 더욱 간절한 찬우였다. 그런 찬우 맘도 모르고, 그의 꾀에 제대로 놀아나고 있는, 잘났지만 너무도 단순한 금숙이.
“기다리라이! 내 금방 찍어서 보내 낀께네.”
띠링. 콧김을 벌렁거리는 분노에 찬 자기 사진을 금방 보내온 금숙이. 찬우는 그 사진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다.
“푸하하. 역시 금숙이 너답다! 으이구, 이 녀석아! 넌 어찌 이리 귀엽냐? 보고 싶다. 부지런히 공부해서 얼른 서울로 올라와라.”
단말기 속 사진을 가만히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기는 찬우 맘을 금숙은 언제쯤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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