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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그들이 사랑하기까지
이연화 지음로망띠끄2014.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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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평점 | :  [참여수 0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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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 : 979-11-258-04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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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스물일곱)
최윤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로써 더욱 확실해진 건 그의 사랑, 나연은 사랑이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무한한 사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에 관한 판단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에게 이렇게 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옳지 못한 것일까, 매사 판단하기 직전까지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그가 더 밀어붙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연은 윤성을 밀어낼 자신은 없다. 아니, 어쩌면 밀어내고 싶지 않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오는 혼란, 그 혼란의 근본은 여지없이 최윤성이다.
그녀는 그에게 흔들린다.
최윤성 (스물넷)
그녀만의 향이 있다는 건 열일곱 살 그해 겨울 즘, 그때부터 그의 후각이 인식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친누나와는 다른 향, 그리고 한 여자의 향. 한창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들끓고 여자의 샴푸 향 하나에도 예민했던 그 시절, 그녀 특유의 그 향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슨 향수를 쓴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브랜드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향수 향과 샴푸 향이 절묘하게 잘 어울려져서 특유의 향이 있었다. 그 향이 참 좋았고, 심장을 뛰게 했었다. 두근두근 뛰어댔던 게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녀가 곁에 있거나 혹은 스쳐지나갈 때마다 코끝으로 스며들어오는 그 향기를 참 좋아했다. 또래 여학생들에게서 느낄 수도 없는 그녀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그 향기, 그는 그녀에게 서서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친구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어린 나이여서 연상에 대한 환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랬다. 지금과 같은 마음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무모한 사랑이라 해도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의 끝나지 않는 갈망, 그 갈망을 채워 줄 수 있는 건 이나연 그녀뿐이다.
그는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본문 中에서
“잘 지냈나 보다.”
윤성의 물음에 나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있었다. 까만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늘 보아오던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이 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늘 그랬던 것처럼 흔들림이 없어서 그의 시선을 받고 있는 나연이 먼저 시선을 피해 버렸다.
“응, 넌?”
나연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년 사이 많이 달라진 그의 모습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군대 갔다 오면 남자가 된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앳되어 보이던 그의 얼굴이 제법 남자다워졌다.
“나야, 뭐 죽을 맛이었지. 군대란 데가 그렇잖아. 여기는 서울보다 조용해서 좋지?”
“응.”
윤성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려고 하는 게 나연의 눈에도 보여서 그녀도 그의 뜻에 따라 주었다. 나연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와 있는 게 좀 껄끄러운지 시멘트 바닥을 발바닥으로 긁었다. 시멘트 바닥과 운동화 바닥의 마찰 소리가 거칠게만 들려왔다. 이러고 가만히 있으니 대지의 열기가 스멀스멀 발끝을 타고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름의 열기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와야 한풀 꺾이려나, 나연이 이마를 매만졌다. 땀방울이 맺히려 하고 있었다.
윤성은 자신의 시선을 피한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년 만인데, 변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마른 것만 빼면.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했다.
“안 올라가?”
“어? 아, 올라가야지.”
멀거니 서 있는 나연을 보며 윤성이 먼저 뒤돌아 아파트로 걸음을 옮겼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연도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비밀번호는 0322야.”
현관 앞에 먼저 도착한 윤성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 보고 나연이 비밀번호를 말해 주었다. 나연의 말에 따라, 그가 긴 손가락으로 0322를 꾹꾹 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예전보다는 조금 굵어진 것 같았다. 조금 더 남자다워진 느낌, 하지만 여전히 예쁜 손. 윤하도 그렇고 윤성도 그렇고 두 사람은 손가락이 참 예쁘다. 나연은 문득 자신의 손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져서 손가락을 쫙 펼치고 눈앞에서 흔들어 봤다. ……그다지, 예쁜 손은 아닌 것 같다.
“뭐해.”
“그냥…….”
“그냥?”
“어, 그냥.”
나연이 집 안으로 들어서고, 거실에 서 있던 그가 이리저리 둘러보다 소파에 앉았다. 이 어색한 기류. 사람이 한 명 늘면 조금은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마땅히 뭘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어서, 제 집이 아닌 곳에 온 것처럼 멀뚱거리던 나연이 TV를 켰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라도 있어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TV를 켜자 그가 소파 귀퉁이에 나뒹굴고 있던 리모컨을 집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채널 한 바퀴를 다 돈 그가 개그 프로에서 손을 멈추었다.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개그맨들, 그리고 방청객들의 웃음소리에도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던 나연은 몸을 돌려 침실로 향했다.
최윤성은 변하지 않았다. 이로써 더욱 확실해진 건 그의 사랑, 나연은 사랑이라고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의 무한한 사랑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며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그에 관한 판단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어렵다. 그에게 이렇게 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옳지 못한 것일까, 매사 판단하기 직전까지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우유부단한 행동 때문에 그가 더 밀어붙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연은 윤성을 밀어낼 자신은 없다. 아니, 어쩌면 밀어내고 싶지 않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 오는 혼란, 그 혼란의 근본은 여지없이 최윤성이다.
그녀는 그에게 흔들린다.
최윤성 (스물넷)
그녀만의 향이 있다는 건 열일곱 살 그해 겨울 즘, 그때부터 그의 후각이 인식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친누나와는 다른 향, 그리고 한 여자의 향. 한창 여자에 대한 호기심이 들끓고 여자의 샴푸 향 하나에도 예민했던 그 시절, 그녀 특유의 그 향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무슨 향수를 쓴다고 했었던 거 같은데 브랜드명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향수 향과 샴푸 향이 절묘하게 잘 어울려져서 특유의 향이 있었다. 그 향이 참 좋았고, 심장을 뛰게 했었다. 두근두근 뛰어댔던 게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녀가 곁에 있거나 혹은 스쳐지나갈 때마다 코끝으로 스며들어오는 그 향기를 참 좋아했다. 또래 여학생들에게서 느낄 수도 없는 그녀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그 향기, 그는 그녀에게 서서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친구가 아니라 한 여자로서. 어린 나이여서 연상에 대한 환상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랬다. 지금과 같은 마음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무모한 사랑이라 해도 그를 막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의 끝나지 않는 갈망, 그 갈망을 채워 줄 수 있는 건 이나연 그녀뿐이다.
그는 그녀를 흔들리게 한다.
본문 中에서
“잘 지냈나 보다.”
윤성의 물음에 나연이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까만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있었다. 까만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늘 보아오던 것을 보고 있는 것처럼. 이 년이라는 시간의 공백이 무색할 만큼, 늘 그랬던 것처럼 흔들림이 없어서 그의 시선을 받고 있는 나연이 먼저 시선을 피해 버렸다.
“응, 넌?”
나연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이 년 사이 많이 달라진 그의 모습이 새롭게만 느껴진다. 군대 갔다 오면 남자가 된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앳되어 보이던 그의 얼굴이 제법 남자다워졌다.
“나야, 뭐 죽을 맛이었지. 군대란 데가 그렇잖아. 여기는 서울보다 조용해서 좋지?”
“응.”
윤성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하려고 하는 게 나연의 눈에도 보여서 그녀도 그의 뜻에 따라 주었다. 나연은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와 있는 게 좀 껄끄러운지 시멘트 바닥을 발바닥으로 긁었다. 시멘트 바닥과 운동화 바닥의 마찰 소리가 거칠게만 들려왔다. 이러고 가만히 있으니 대지의 열기가 스멀스멀 발끝을 타고 위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여름의 열기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가 와야 한풀 꺾이려나, 나연이 이마를 매만졌다. 땀방울이 맺히려 하고 있었다.
윤성은 자신의 시선을 피한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년 만인데, 변한 건 없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마른 것만 빼면.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해져 버렸다. 그녀는 여전히 솔직하지 못했다.
“안 올라가?”
“어? 아, 올라가야지.”
멀거니 서 있는 나연을 보며 윤성이 먼저 뒤돌아 아파트로 걸음을 옮겼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연도 곧장 그의 뒤를 따랐다.
“비밀번호는 0322야.”
현관 앞에 먼저 도착한 윤성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걸 보고 나연이 비밀번호를 말해 주었다. 나연의 말에 따라, 그가 긴 손가락으로 0322를 꾹꾹 눌렀다. 그의 손가락이 예전보다는 조금 굵어진 것 같았다. 조금 더 남자다워진 느낌, 하지만 여전히 예쁜 손. 윤하도 그렇고 윤성도 그렇고 두 사람은 손가락이 참 예쁘다. 나연은 문득 자신의 손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져서 손가락을 쫙 펼치고 눈앞에서 흔들어 봤다. ……그다지, 예쁜 손은 아닌 것 같다.
“뭐해.”
“그냥…….”
“그냥?”
“어, 그냥.”
나연이 집 안으로 들어서고, 거실에 서 있던 그가 이리저리 둘러보다 소파에 앉았다. 이 어색한 기류. 사람이 한 명 늘면 조금은 시끌벅적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마땅히 뭘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어서, 제 집이 아닌 곳에 온 것처럼 멀뚱거리던 나연이 TV를 켰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잡음이라도 있어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TV를 켜자 그가 소파 귀퉁이에 나뒹굴고 있던 리모컨을 집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채널 한 바퀴를 다 돈 그가 개그 프로에서 손을 멈추었다.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화면을 꽉 채우고 있는 개그맨들, 그리고 방청객들의 웃음소리에도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던 나연은 몸을 돌려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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