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친하지 않았다고 이제 모두 지난 일이라고 여기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짐만 될 뿐이라고 서로의 인연은 전생의 업보처럼 지겨운 것이라고 여기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를 달가워하지 않은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희정이라는 사람의 죽음을 계기로 서로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인타이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었죠. 거기에 살을 조금 덧입히고 내용을 조금 변경하였습니다. 로맨스 소설이라기보다 추리물의 양념을 조금 더 친 이상한 퓨전 음식입니다만 그럼 부온 아페띠또!



-본문 중에서-

주인 여자는 처음에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년 전에 저기 왜 지하 방에 살던…….”
그제야 얼굴색이 하얗게 되며 놀라는 얼굴로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 얼굴을 찌푸리고 잠깐 한숨을 쉬더니 나를 안으로 들였다. 주인 여자는 미처 묻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아마 동네 사람들에게 수십 번을 되풀이하면서 이제 자동 재생으로 술술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죽기 열흘 전에 그 방에 들어왔다고 하였다. 어둡고 습기 차고, 낮은 창이 거리에 바로 면해 밤낮으로 시끄러워 한 번 나가면 보통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방이었다. 그런 방에 들어오는 사람의 살림치고는 꽤나 값나 보이는 가구들이라는 게 또 다른 점이기는 하였지만 실려 온 살림 자체는 몹시 단출하였다. 워낙 사람 나고 들기를 많이 하는 방인데다가 비어 있기를 태반을 하는 방처럼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려니 해서 주인 여자도 되도록이면 눈길 주지 않고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희정은 이상하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한다.
식사는 보통 시켜 먹는 모양으로 그것도 하루 한 끼 안 될 때도 많았고, 집 밖으로는 거의 나와 보지를 않아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수도 값을 핑계로 전기세를 핑계로, 두어 번 일부러 들여다보았는데 그때마다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자신을 잔뜩 경계하고 바깥을 살피더라는 것이었다.
“찾아온 사람도 없었어요?”
“정말이라니까요. 찾아온 사람도 없었고 만나러 나가는 사람도 없었어요. 저녁에 불 꺼져 있어서 사람 있나, 내가 귀신한테 방을 세놓았나 싶을 지경이었다니까.”
그렇게 살피기를 자주 하였는데도 돌아서면 금방 다쳐서 울고 있는 아이들처럼 늘 눈에 붙이고 살필 수는 모양이라며 잠깐 그렇게 죽어 버렸단다. 어느 저녁 말 되지 않는 핑계로 찾아갔는데 대답이 한참이 없어서 그냥 갔다가 이상해서 발길을 돌려 몸을 숙이고 창문 안을 들여다보는데 창문을 수건으로 가스가 새지 않게 꼭꼭 우겨 넣은 게 보이더란다. 그대로 창문을 깨고 덧살창을 사람 불러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가서 방 한구석에 토사물을 토하고 몸이 비틀려 누워 있는 희정을 발견하였다는 것이었다.
“안에서 잠겨 있고 별로 이상한 게 없어서 경찰에서도 금방 자살로 결론짓고 화장해 버린 모양이더라구요.”
“화장요?”
“어떻게, 먼 친척이란 사람이 연락이 된 모양인데 그 사람이 거의 생면부지의 먼 조카를 거둬들여 기특하게도 장례를 치러 준 거지.”
아주머니는 한 차례 경찰서에 가서 간단히 조서를 꾸미고 지금처럼 아무래도 낌새가 이상해서 지켜보고 있었더라는 것 그 덕분에 만 하루도 안 되어 금방 발견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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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괜찮으세요?”
구석의 코트를 바르게 펴고 있던 다른 젊은 점원이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다는 말이 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힘겹게 고개만 끄덕였다.
“어디 아프세요? 물이라도 한 잔 드릴까요?”
나는 나도 모르게 떨리는 손을 내밀어 가로저었다. 그리고 아픈 손마디를 쥐듯 천천히 손을 꼭 쥐었다. 일어서려는 내 발길이 불안하였는지 점원은 손을 내밀었지만 괜찮다고 다시 한 번 손을 내저어 거절하였다. 점원은 내민 손을 어쩌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물에 빠진 사람이 발버둥 쳐 빠져나오듯 나는 문을 향해,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부티크 문밖은 서울 날씨답지 않게 쨍한 햇살이 비 내린 거리에 되비쳐 눈이 아렸다. 잠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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